한반도형 프라이카우프, 탈북자송금의 위력

<안찬일 국립한경대 교수>

선행하여 통일을 이룬 독일로부터 우리가 배울 것은 많다. 그 중 프라이카우프(freikauf)방식은 어떤가. 옛 서독의 동독 반체제 인사 석방사업으로 동독에 돈을 주고 정치범을 데려온 방식을 프라이카우프라고 부른다. ‘자유를 산다’는 의미다. 무엇을 주고 어떤 것을 받는다는 점에서 독일의 통일정책이 일종의 ‘교환’이었다면, 우리가 북한에 무엇을 주고 어떤 것을 얻는다면 이는 단순한 교환이 아니라 분명 ‘확대 재생산’이 될 수 있다. 북한주민을 장악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통일이기 때문이다.

美망명 쿠바인, 탈북민 10배의 35만명

통일 전 서독은 동독의 정치범들을 서독으로 데려올 목적으로 현금과 현물을 동독 측에 제공했다. 당시 동서독은 당국이 직접 나서지 않은 채 교회, 변호사 등 민간이 주도하는 사업으로 진행시켰고 언론도 협조해 철저하게 비밀리에 이뤄졌다. 1963년 첫 사업을 시작한 이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까지 이어졌는데, 서독은 3만 3,755명을 송환한 대가로 34억 6,400만 마르크에 해당하는 현물을 동독에 지불했다.
우리 역시 오늘날 김정욱 선교사를 비롯하여 국군포로와 강제 납북자 등 데려올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한반도형 프라이카우프는 아직 작동하지 않고 있다. 아니 요지부동이다.
쿠바의 사례는 어떤가?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부패정권을 타도하고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을 이룩했던 1959년 카스트로의 나이는 33세였다.
카스트로는 쿠바난민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했다. 1980년 “미국으로 떠날 사람은 모두 떠나라”며 항구를 전격 개방했다. 수도 아바나에서 미국 플로리다 최남단인 키웨스트(Key West)까지 거리는 90마일(145㎞), 보트로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6개월간 무려 12만 5,000명의 쿠바인이 플로리다 해협을 건넜다. 카스트로는 탈출 행렬에 반체제 인사와 정치범, 전과자와 정신박약자를 대거 포함시켰다.
카스트로는 자신을 반대하던 사회 불만세력을 일거에 ‘청소‘하면서 오히려 정권내부결속을 다지는 계기로 삼았다. 반대로 한순간에 ‘난민폭탄’을 맞게 된 미국사회는 술렁였다. 당시 빌 클린턴 아칸소 주지사는 쿠바난민을 아칸소 주에 수용키로 한 결정에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주지사 재선에 실패했다.
카스트로는 미국과 쿠바 간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쿠바인의 탈출을 방치해 미국을 곤경에 빠트리겠다”고 협박했다. 1994년에도 카스트로의 의도적인 난민방출로 3만5,000명의 쿠바인이 미국으로 망명했다. 공교롭게도 그해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은 결국 쿠바정부가 난민의 탈출을 막는다는 조건으로 연 2만 명의 쿠바 이민자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북한가족에 보내는 돈 연간 120억원

쿠바 혁명이 56주년을 맞은 올해까지 약 200만 명의 쿠바인이 미국에 둥지를 틀었다. 쿠바 전체 1,100만 인구 중 20%에 가까운 수치다. 마이애미에는 쿠바난민정착촌 ‘리틀 아바나(Little Havana)’가 생겼고 테드 크루즈와 마코 루비오 등 다음 대선의 주요 후보를 둘씩이나 낼 만큼 영향력도 키웠다. 특히 주목할 것은 미국정부가 난민의 쿠바송금을 적극 허용하는 정책을 편다는 점이다. 난민들이 매년 쿠바의 친지에게 30억 달러를 보낸다. 외국인 300만 명이 찾는 쿠바의 관광소득보다 많다. 실속 있는 산업이 없는 쿠바경제를 난민의 송금이 지탱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난민 폭탄’을 미국에 쏘겠다던 카스트로 정권이 자세를 바꿔 난민들의 본국 방문을 적극 허용하고 더 많은 달러를 쿠바에 뿌리도록 장려한다.
1990년대 말 이후 현재까지 국내에 정착한 탈북민은 총 2만 8,500여 명이다. 몇 해 전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이들이 북에 남겨둔 가족에게 보내는 돈이 연간 120억 원 정도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탈북민 송금액이 300억 원 이상으로만 늘어도 북한경제의 대외 의존도를 더욱 높이며 경제개방 같은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혹자는 그 돈이 김정은의 통치자금이 되는 것은 아니냐고 걱정하지만 기우다. 탈북민 가족들을 감시해야 하는 공안기관 사람들이 그 돈에 기생하지만 오히려 이는 그들을 체제로부터 이탈시킨다는 데로부터 긍정적이다. 남북협력기금을 쌓아두고 어디에 쓸까 고민할 것이 아니라 탈북자들의 가족송금을 돕는다면 이야말로 한반도형 프라이카우프가 아닌가.

(후략)

출처 : 통일신문 www.unityinfo.co.kr/sub_read.html